“불량은 암” 죽어가는 삼성을 되살리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한 돌발적인 행동

故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형 이맹희와 이창희를 제치고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되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타계 후 13일 만에 1987년 12월 1일에 회장에 취임하게 되었죠.

이건희 회장이 쓴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를 보면 그 당시 삼성의 상황을 익히 알 수 있습니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삼성 내부는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업 한 두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당시, 삼성 내부에서는 ‘국내 제일주의’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그가 바라봤을 때 삼성이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기’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는 죽어가는 삼성을 되살리기 위해 돌발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그 행동으로 인해 삼성은 세계 일류의 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건희
1993년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 회의 中

그는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캠핀스키 호텔에서 삼성 계열사 사장들과 임직원들을 모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봐라.”

실제로 삼성의 제품은 일부 시장에서만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삼성의 변화로 이어졌고 엄청난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애니콜 화형식

당시, 삼성전자는 모토로라를 따라잡기 위해 휴대폰 생산량을 늘려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품 생산을 무리한 탓에 휴대폰 불량률은 11.8%까지 치솟았습니다.

고객이 대리점 사장에게 “불량품을 팔았다”며 뺨을 얻어맞는 사건까지 일어났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건희 회장은 격노하였고 “불량은 암”이라며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회수해 공장 사람들이 보이는 앞에서 모두 태우라”고 지시했습니다.

운동장에 휴대폰 15만 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해머를 손에 쥔 10명의 직원이 휴대폰을 박살내고 불까지 붙였습니다. 이는 약 500억 원정도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1994년 국내 4위였던 삼성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1년 뒤 시장 점유율 19%에 달성하며 1위에 올라섰습니다.

애니콜 신화는 국내 시장 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갔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던 모토로라는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1위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으로 인해 불량률이 현저히 줄었고 재계 품질경영 도입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지금의 삼성전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 주요 어록

이건희 어록
  •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90년대까지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 기업은 혼자서만 잘해서는 안 되는 생명체다.
  •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 뛸 사람은 뛰어라. 바삐 걸을 사람은 걸어라. 걷기 싫으면 놀아라.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왜 앞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으로 돌려놓는가?
  • 출근부 찍지 마라. 없애라. 집이든 어디에서든 생각만 있으면 된다. 회사에서만 할 필요 없다.
  • 6개월 밤을 새워서 일하다가 6개월 놀아도 좋다. 논다고 평가하면 안된다. 놀아도 제대로 놀아라.
  •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어떤 승리에도 결코 우연은 없다는 사실이다.
  • 21세기에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
  • 기존의 틀을 모두 깨고 오직 새로운 것만을 생각해야 한다.
  •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회사와 나라의 손해다.
  • 불황기에는 기업 경쟁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며,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시장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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