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나라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4가지

어떤 나라가 성공하고 어떤 나라가 실패할까? 지구촌은 도대체 왜 평평하지 않을까? 또 우리나라는 어느 길로 가야 할까?

세계사를 간단하게 보면 2대 변곡점이 있었다.​

성공한 나라

첫째는 13세기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다. 이때 비로소 진짜 세계사가 시작됐다. 그 전까지는 동아시아, 유럽, 중동.. 이렇게 따로국밥, 지역별 역사였다.​

둘째는 18~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다. 몽골제국으로 세계사가 열렸지만 인간의 생활수준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왕조 교체, 세력 교체.. 정도에 그친 정도. 그러다가 산업혁명 이후부터 생활의 질이 달라졌고 불평등도 확대됐다.

​세계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이론은 3가지가 있다.

성공한 나라 | 지리적 위치

​첫째는 지리적 위치. 그 차이 때문에 빈부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열대지역은 대부분 못 살고 온대지역에 잘사는 나라들이 몰려 있잖아요? 열대지역은 날씨가 더워 사람들이 게으르고 힘들게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동의하시는 분이 꽤 되실 것 같은데요. 그러나 책은 문명의 발상지인 인더스강 유역이나 캄보디아의 앙코르왕국, 현재 아프리카의 소득 1위인 보츠와나나 싱가포르 등을 볼 때 보편타당성이 없다고 봅니다.

​지정학도 여기에 들어가겠죠. 우리가 사는 반도의 지정학을 보죠.

​반도는 대륙과 바다 사이에 있잖아요? 양날의 칼이죠. 잘하면 대륙과 바다를 아우를 수 있는 요충이지만, 잘못하면 양쪽에서 위협받는 고달픈 신세가 되는 것이죠.

​역사적으로 이탈리아반도의 로마, 터키반도의 오스만터키, 한반도의 고구려! 모두 력한 국력과 건강한 정신으로 대륙과 바다로 뻗어갔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조선은 국력이 허약하다 보니 오히려 양쪽에서 협공 당했죠.

성공한 나라 | 문화

​둘째는 문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주장인데, 개신교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발전을 촉발한다는 관점이죠.

​그러나 책은 역시 정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동아시아, 기독교와 관계가 없잖아요? 이탈리아와 프랑스? 가톨릭 국가고요.​

멀리 갈 것 없이 남한과 북한을 보십쇼. 같은 역사와 문화를 가졌지만 야경이 너무나 대조적이잖아요?​

성공한 나라 | 무지가설

셋째는 무지가설입니다. 나라의 집권층이나 국민이 번영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시장실패를 줄이고 성장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정책의 개발과 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대부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잖아요? 안하는 것이죠. 여러 제약과 갈등을 넘지 못해 빈곤과 후퇴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죠.​

결국 나라를 풍요와 빈곤으로 엇갈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책이 제시하는 답은 정치경제제도가 착취적이냐 포용적이냐! 여기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는 것입니다. 착취와 포용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좀 더 살펴보죠.​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먼저 적절한 인센티브-동기부여-가 있어야 합니다. ​

그래야 혁신이 일어날 수 있거든요. 예컨대 신분사회는 인센티브가 제한됩니다. 열심히 일 해봤자 자기 신분을 넘는 반대급부를 얻을 수 없잖아요?​

구한말 선교사 제임스 게일(James S. Gale)이 쓴 책(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을 보면 조선에서 게으른 상민들이 만주에서는 열심히 일하더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조선과 만주에서 각각 기대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달랐기 때문이죠.​

혁신이 일어나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창조적 파괴로 연결됩니다.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이익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죠.​

그 결과 사회가 변화해 번영의 결실을 누리게 되고, 이후 성공한 나라 선순환 과정에 따라 사이클이 반복됩니다.​

반면 착취적 제도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물론 어느 수준까지는 경제성장이 이루어질 수는 있습니다. 과거 소련이나 지금의 중국과 같은 경우죠.​

그러나 인센티브가 집권층의 수탈, 부정부패와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제한되고 ​혁신이 일어나더라도 집권층의 이익을 건드리게 되면 퇴출당하게 됩니다. 결국 창조적 파괴로 연결되지 못해 성공한 나라는 커녕 경제발전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이죠.​

실제 사례를 보죠. 16세기 영국인들은 엘리자베스1세 여왕의 칙령에 따라 뜨개모자를 착용해야 했습니다.​

그때 케임브리지 대학생 윌리엄 리(William Lee)가 사제가 되기 위해 집에 와 있었는데, 어머니와 누이들이 침침한 등잔불 아래서 밤새 뜨개질을 하거든요.​

안쓰러워 6년 동안 고생해 1589년 세계 최초로 양말 짜는 기계를 만듭니다. 그리고 특허를 받기 위해 여왕 앞에서 직물기계를 시연했지만, 여왕이 특허를 거절하죠.​

실직자들이 생겨 정치적 불안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 것이었죠. 혁신기술이 창조적 파괴로 연결되지 못한 것입니다. 리는 프랑스로 건너가 편직물 공장을 세우죠.​

이번에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James Watt)인데요. 1775년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반대가 극렬했지만 마침내 앞으로 25년 간 증기기관의 재산권을 저에게 부여하는 의회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미 그 수요가 상당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와트는 1769년 증기기관을 발명해 14년 동안의 특허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6년이 지난 상태였고, 상용화의 어려움으로 재정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새로 특허권 25년을 부여받았던 것이죠.​

그 후 와트의 증기기관은 방적 공장과 제철 공장, 배, 기차 등에 널리 적용되며 역사의 게임 체인저가 되죠.​

두 사례에서 주목할 것은 기술혁신에 대한 사회의 대응이 정반대였다는 것입니다. 시차가 186년인데요. 이 동안 영국에서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요?​

이 기간 중 영국에서 권력 분산과 다원화가 꾸준히 일어났습니다. 왕과 가신의 권력이 약화되고 경제제도를 결정할 권한이 의회에 귀속되었죠. 여러 계층이 폭넓게 참여하는 정치 체제가 마련됐던 것이지요.​

1688년 명예 혁명이 결정적 사건이었죠. 당시 영국은 수탈적 제도였습니다. 농노제 같은 봉건노예 제도는 사라졌지만 경제 활동에 많은 제약과 독점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죠.​

그러나 명예 혁명 후 자의적 과세와 독점이 철폐됩니다. 사유 재산권도 적극 옹호하고 아이디어에 특허권을 부여해 혁신 의욕을 고취함. 포용적 제도로 바뀐 것이죠.​

‘포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1347년 유럽에 페스트가 상륙했습니다. 터키와 이탈리아 남부에서 시작해 북상하여 러시아와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전 유럽에 퍼졌습니다.​

불과 7년 동안에 2500만 명이 희생됐죠.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으니까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노동력이 급감해 임금이 오르죠. 그러니까 소작농의 목소리가 높아져 부역과 벌금을 줄여달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농노에 의존하던 봉건질서가 무너지죠.​

상황은 유럽 전체가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처에 있어서 동유럽과 서유럽이 서로 다른 길을 갔죠. 동유럽에서는 임금이 오르지 못하게 노동 시장을 규제하고 소작농을 더 강하게 옥죄었습니다.​

물론 서유럽에도 그런 욕구를 느끼는 영주 귀족들이 많았죠. 그러나 동유럽과 달리 이미 농노들이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었거든요. 귀족들의 뜻대로만 할 수 없었죠.​

또 대항해시대를 맞아 식민지 개척이라는 대안을 갖고 있었습니다. 잃을 것이 많은 동유럽의 귀족들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 결과 러시아와 동유럽은 1800년대까지 농노제를 유지하는 절대왕정의 착취적 체제로 갑니다. 서유럽은 근대 산업사회로 바뀌기 시작하고요.​

또 같은 서유럽 중에서도 명예 혁명으로 포용적 체제를 갖춘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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